전통의례 해설

여충사(麗忠祠) 축문과 전경

조진사 2013. 1. 7. 16:50

 

 여충사(麗忠祠)

광탄면 혜음로 930 (광탄면 분수리 4-1)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려 예종(睿宗)때 여진정벌의 공을 세운 명장 윤관(?~1111)의 묘로 사적 제323호로 지정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묘의 소재를 모르다가 1764년(영조 40)윤관의 구비파편(舊碑破片)이 발견된 후 영조가 봉분을 새로 조성하고 치제(致祭)하게 함으로써

윤관의 묘소임이 공인되었다.
묘역의규모는 크고 웅장하며 봉분과 석물이 단을 이루며 자리 잡고 있다. 봉분아래는 장대석 모양의 호석(護石)을 두르고 봉분 뒤로 담장을둘러 아늑한

느낌을 주고 있다.
봉분정면에 상석(床石)이 놓여있으며 왼쪽에 묘비가 서있다. 한 계단 아래에 양쪽으로 망주석과 상석전면에 사각의 장명등이 세워져 있다.

 윤관(尹瓘)     ? ~ 1111
고려시대의 명신 ·명장.
본관 파평(坡平). 자 동현(同玄). 시호 문숙(文肅).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습유(拾遺)·보궐(補闕)을 거쳐 1095년(숙종 즉위) 좌사낭중(佐司郞中)으로

요나라에 파견되어 숙종의 즉위를 알렸다.

추밀원지주사·어사대부·이부상서 등을 거쳐 1104년 추밀원사로서 동북면 행영병마도통사(東北面行營兵馬都統使)가 되어 여진을 정벌하다가 실패하였다.
그뒤 별무반(別武班)을 창설하여 군대를 양성, 1107년(예종 2) 여진 정벌군의 원수가 되어 부원수 오연총(吳延寵)과 17만 대군을 이끌고 동북계에 출진,
이때 함주(咸州)·영주(英州)·웅주(雄州)·복주(福州)·길주(吉州)·공험진(公?鎭)·숭녕(崇寧)·통태(通泰)·진양(眞陽)의 9성을 쌓아 침범하는 여진을 평정하고

이듬해 봄에 개선,  그 공으로 추충좌리평융척지진국공신(推忠佐理平戎拓地鎭國功臣)·문하시중(門下侍中)·상서이부판사(尙書吏部判事)·군국중지사

(軍國重知事)가 되었다.
그뒤 여진은 9 성의 환부를 요청하며 강화를 요청해오자, 조정은 9 성을 지키기 어렵다 하여 여진에게 돌려주었다.
정세가 바뀌자 여진정벌의 실패로 모함을 받아 벼슬을 빼앗기고 공신호마저 삭탈되었으나,
예종의 비호로 1110년 수태보(守太保)·문하시중(門下侍中)·병부판사(兵部判事)·상주국(上柱國)·감수국사(監修國史)가 되었다. 예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