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례 해설

석전제홀기해설

조진사 2012. 12. 26. 13:26

산천이나 공자를 모신 문묘(文廟) 등에 제사를 올리는 의식.

제사
석전제, 석채(釋菜), 상정제(上丁祭), 정제(丁祭)라고도 한다. 정제, 상정제라고 한 것은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첫 丁日)에 행해졌기 때문이다.
석전은 〈예기 禮記〉의 왕제(王制) 문왕세자편(文王世子篇)에 나오는 말로 석(釋)은 '놓다'[舍也], '두다'[置也]의 뜻이고 전(奠)은 '그치다'[停也]의 뜻으로
 처음에는 소박하게 채소만 놓고 제사를 지내다가, 뒤에 고기와 과일 등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했다.
중국에서는 이미 주대(周代)부터 순(舜)·우(禹)·탕(湯)·문왕(文王) 등 여러 성인들에게 석전을 올렸으며, 한(漢)나라 이후 유교를 숭상하면서 공자(孔子)를

제사하는 의식으로 굳어졌다.
후한의 명제(明帝)는 공자의 옛집을 찾아가 공자와 그의 72제자에게 제사를 올리기도 했으며, 당(唐)나라 이후 공자를 선성(先聖), 안회(顔回)를 선사(先師)로

받들어 제사지내는 일이 일반화되었다.
739년에는 공자에게 문선왕(文宣王)이라는 시호가 추증되었다.
그뒤 명(明)나라 때 태학(太學)의 문묘를 대성전(大成殿)이라 하여 석전을 올리는 사당으로 정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석전이 실시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고구려·백제·신라 모두에 교육기관이나 유학을 교육한 관직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석전을 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신라의 경우 717년(성덕왕 16) 당나라에서 공자와 10철(十哲) 72제자의 화상을 가져와 국학(國學)에 모셨다는 기록으로 보아 국학에서 석전을 지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도 국자감(國子監:成均館)에 문묘를 두어 제사를 지냈는데, 왕이 직접 잔을 올렸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조선시대에는 건국이념이 유교인 만큼 처음부터 성균관에 문묘를 설치하고 중국의 현인(賢人)과 우리나라의 18현인을 합친 112현인의 위패를 모신 뒤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
지방에서는 향교(鄕校)에서 석전을 주관했다.

1949년 전국유림대회의 결정으로 112현인 가운데 우리나라의 18현인만 대성전에 모시고, 중국 94현인의 위패는 묻었다.
198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었고 기·예능보유자에 강정희(姜正熙, 1996 해제)·권오흥(權五興)이 있다.

 

 

 

 

 

 

 

 

 

 

 

 

 

 

 

 

* 홀기(笏記) : 혼례나 제례때 의식의 순서를 적은 글.
* 집례(執禮) : 행사 진행을 맡아 홀기를 낭독하는 사람.
* 알자(謁者) : 헌관과 집사를 행사 위치로 안내 하는 사람.
* 찬인(贊引) : 헌관과 집사에게 절차와 동작을 인도하고 답홀하는 사람.
* 봉향(奉香) : 향합을 받들어 헌관에게 드리는 사람(우집사)
* 봉로(奉爐) : 향로를 받들어 헌관에게 드리는 사람(좌집사)
* 봉작(奉爵) : 술잔을 받들어 헌관에게 드리는 사람(우집사)
* 전작(奠爵) : 헌관으로부터 술잔을 받아 신위전에 올리는 사람(좌집사)
* 축관(祝官) : 축문을 작성하여 독축하고 불사르는 사람.
* 독축(讀祝) : 축을 읽음.
* 분축(焚祝) : 축을 불로 태움.
* 초헌관(初獻官) : 제일 먼저 잔을 올리는 사람.
* 아헌관(
亞獻官) :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사람.
* 종헌관(終獻官) :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사람.
* 거멱작주(擧冪酌酒) : 술 항아리의 덮개를 열고 술을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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